심도
<출처> 다음카페 광룡정 - 현일선생
이것을 자발공이나 기타 여러 단체마다 이름과 방법이 있는데 심도라고 하는 이유는 이것이 단순히 신체의 움직임이나 어떤 효험을 염두에 두고 수련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기 때문인데 삶의 깊은 근원적 이해와 우리 신체활동의 인식의 전환을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세계에 살면서 나고 자라고 성장할때 익숙해진 신체 움직임이 있다. 당연히 손과발을 움직이고 힘쓰고 말하고 생각하며 오고 가는데 이것이 당연한 것이고 이거 외의 것은 인정하지 않게 되어있다. 쉽게 말해 뇌의 작용으로 우리몸은 통제되고 조절되고 있다는 것이고, 곧, 뇌가 우리 자신이 된다고 하는 상식적 수준의 이해를 말한다.
여기서 한발더 나아가 뇌를 한번 더 상위에서 통제하는 방법이 있는 것을 말하는데 우선 우리는 뇌가 생각하고 몸을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하는 것이라고 예전부터 그리고 내가 전에도 그렇게 말햇다.
다시말해 팔을 하난 올리는데 아님 움직이는데 지금까지 와는 다르게 내가 지켜보면서 명령이나 생각을 주게된다. 다시말해 움직였으면 하는 생각을 한후 그렇게 움직이게 되는 내 신체를 관조하는것이다.
나를 내가 운전하듯 그렇게 제삼자 처럼 다루는 것이다.
내몸 밖으로 나가 있듯이 할 필요는 없고 해도 되지만...
그냥 평소처럼 손을 움직이면서 움직이는 손을 내손 아니듯 무심히 또는 남의 손보듯 보는것이다.
몸이 저절로 움직이거나 접신된 것처럼 발광하는것도 물론 있을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하고자하고 중요한 것은 나를 즉, 내육체를, 감정을, 생각을, 생리활동등을 내의지로 벗어나고 들어오고 하며 나인듯 나아닌듯한 경험을 하는것이며 감정과 생각과 육체등 모든 나의 당연한 것에서 한발 물러나 관망하는 더깊은 내 심연적 깊이를 느끼는 것이다.
나를 벗어나 내움직임을 보면서 나를 발견하는것이고 내감정만 관찰하는것에서 나아가 내몸도 관찰하는것이고 이렇게 내가 나를 관찰 할수 있다는것을 아는것이다. 나아가 나에게 순응하고 천지에 순응하며 살아가는것을 아는것이다.
내가 살아움직이고 있다는것을 보는것인데 방법은 자발공이나 시해나 아님 단순히 나를 제삼자처럼 보는것이나 방법은 많지만 결국 이것이 내가 나이면서 아닌것이라는것을 이해하는 것이고 무아를 아는것이고 법의 공을 알아 가는것이다. 그렇게 지켜보는 나도 인위적 설정이지 본래는 아니니 오로지 그러할뿐 아무것도 아닌것이다.
그래서 이 수준에서 혼을 빼거나 비슷한 분심술을 하는것도 같은 이유에서 하는것인데 기술은 하는데 지혜는 없다. 나에게서 벗어난다고 두려울것도 없고 이상할것도 없다. 나를 넘어 그 이상을 추구하는 여유와 신체의 영역적 한계를 넘어 더깊고 더 넓은 세계를 경험하는것이다. 정말로 손과발이 남의 것처럼 저절로 움직이는 것도 있지만 이게 흔히 자발동공같은 말로 한다. 내 움직이는 손발을 내가 그냥 관조하는 것도 있다. 위빠사나가 비슷한가...
이것도 관찰의 응용이고 더나은 지혜의 깊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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