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월 22일 토요일

The Way follows the way things are 道法自然



有物混成、先天地生。寂兮寥兮。獨立不改、周行而不殆。可以爲天下母。吾不知其名。字之曰道。強爲之名曰大。大曰逝。逝曰遠。遠曰反。故道大。天大。地 大。人亦大。域中有四大、而人居其一焉。人法地 地法天 天法道 道法自然。
There is something that is perfect in its disorder
Which is born before Heaven and Earth.

So silent and desolate! It establishes itself without renewal.
Functions universally without lapse.
We can regard it as the Mother of Everything.

I don't know its name.

Hence, when forced to name it, I call it "Way."
When forced to categorize it, I call it "great."

Greatness entails transcendence.
Transcendence entails going-far.
Going-far entails return.

Hence, the Way is great, Heaven is great, the Earth is great
And the human is also great.

Within our realm there are four greatnesses and the human being is one of them.

Human beings follow the Earth.
Earth follows Heaven
Heaven follows the Way
The Way follows the way things are.




현일선생 

도법자연
이말은 도덕경 25장에 나오는 말이다.
도가 끝이 아니라 자연이 끝인데 법法의 해석을 어떻게 해야 할까?
대개는 본받는다고 해석한다. 이전에 '인법천 천법도' 하면서 사람은 하늘을 본받고 하늘은 도를 본받는다고 하면서 해석하는 것같다.
그럼 사람이 본받는 하늘이란 뭘까?
청명한 저 위의 푸른 하늘을 말하는건 아닐 것이다.
난 서양의 자연과학이 오기전엔 푸른 하늘의 허공적인 관념은 우리에게 없었다고 생각한다.
내 인생의 그 질곡과 기뿜과 고통과 희열같은 직접적 삶의 근거로서 운명처럼 생각하던 그 실제라고 하늘을 평소에 보면서 생각했다고 본다.
이것이 과학에 의해 단순한 공간적 무의미한 현상으로 지금의 푸른 하늘이 되었다.

이게 과거엔 내가 살아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감정이 있고 하고싶은 것이 있지만 이건 내 욕심이 아니다.
내가 그렇게 살 수 밖에 없는 것으로 하늘이 하는 것이다.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늘이 사는 것이다.
내가 욕망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이 욕망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우리의 상위에서 근거로 있는 하늘위에 도가 있다고 하는 것은 이도가 단순한 상위가 아니라 하늘과 나의연결로서 이어주는 그 메타하늘이 된다. 즉 품격이라는 것이다. 나의 하늘과 하늘의 하늘로서 그 하늘이 도라는 의미이다.
하늘도 하늘이 하는 것이 아니라 도가 하는 것이다.
하늘이 사는게 아니라 도가 사는 것이다.
하늘이 욕망하는게 아니라 도가 욕망하는 것이다.

이게 나중에 오면 음양오행이 있고 그 위에 태극이, 또 무극이 되는 식으로 말이 바뀐다. 같은 공식이다.
근데 도덕경에는 자연이라는 것을 하나 더 말한다.
그럼 자연이 뭐길래 도가 본받아야 하는 걸까?
어디선 이 자연이 '스스로 그러함'이라서 의미없는 의미라는 것이라고 하는듯하다.
줄이면 '도가 그러하다'고 하는 걸까?
아마 이런식으로 이해하려는 것이 많을 것이다. '스스로 그러하다.' 그럴듯하다.
이게 '위무위'나 하는 식으로 '함이 없이 한다'는 것처럼도 보이고 해서 전체적으로 일관성이 있어 보이는데,

난 하늘이 이미 법이되는 의미가 잇고 도가 이미 스스로 그러하다는 의미가 있는 것으로 본다.
내 인생이 어쩔 수 없는 힘의 흐름에 따를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있고 그것을 하늘로 보면서 하늘도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것으로 도를 본다. 또 도 마저도 어쩔수 없는 것으로 자연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러면 이 자연이라는것은 이미 나나 하늘이나 도나 다 같이 자연이라는 것이 된다.
가면 멀어지고 멀어지면 돌아오는데 나에게서 간것이 나에게로 돌아와서 내가 자연이 된다.
난 이미 자연을 본받고 있었다.

그럼 도는 도가 사는게 아니라 자연이 사는 것인가? 이건 아니다. 이게 자연의 해석의 어려움이다.
도가 스스로 그러하는 게 아니라 우리 모두가 도이전에 하늘이 하늘 이전에 내가 나 이전에 도가 도 이전에 하늘이 하늘 이전에 내가 이렇게 서로서로 먹히고 먹히며 이미 그렇게 하고 있었고 누가 사는지 누가 욕망하는지 그걸 알 수가 없다. 다이거나 아무도 아니거나 때론 하늘이 때론 내가 때론 도가 욕망하는 그렇고 그런 것이다.


도는 보편적인 현상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자연은 개체적인 현상으로 이해한다. 이 세상이나 전체나 하늘이나 천지나 우주나 모든 세계전체를 하나의 개체로보면 이것도 자연이고 나도 개체이니 자연이다.
도도 개체이니 자연이다.
그래서 자연은 나도 하늘도 도도 일체세계도 모두 자연이다.

도법자연이라고 하면 나나 도나 모두가 이미 그렇게 하고 있다는 의미로, 나 오직 나이다.
나는 나의 의식이 아니라 하늘과 도와 일체세계의 모든 현상이 나다.

덧붙이면 나와 하늘과 도는 삼각형으로 항상 서로를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몸의 구성엔 하늘과 도도 포함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의식과 마하와 마가 나와 하늘과 도의 공식과 비슷하다.
내가 있고 나를 보는 자가 있고 그 보는 것을 보는 자가 있다.
이런 것은 저절로 그러하다.
[출처] 도법자연|작성자 현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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